영어 공용화 논쟁(복거일의 민족어와 국제어에서 영어 공용화 주장)

조선일보 (1998년7월) 대논쟁 


[반론] 남영신씨, 복거일씨의 `국제화' 비판 [조선일보 9876]

## 세계화 위해 민족 버리자니…천박한 과잉 세계주의 ##. :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인가. 세기말, 세계화 열풍 속에서 민족주의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가 지식인 사회일각에서 싹트고 있다. IMF 사태의 근본 원인이 따지고 보면 상대를 도외시한 자기세계에만 빠져 있던 맹목적 민족주의 사고에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족주의 비판이 최근 가장 감성적이고 극적으로 나타난 케이스가 소설가 복거일씨의 저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간)이다. 그는 "우리사회의 시급한 과제 하나가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이라며 심지어 영어를 공용어로 것까지 주장했다. 20세기 한국을 이끈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하나인 민족주의는 어느 정도 심각한 위험상황인가. 복씨의 주장이 조선일보 73일자 소개를 통해 보도되자 인문과학자들 사이엔 격렬한 논쟁이 조짐이다. 이번엔 복씨의 논거에 대한 반박이다. .

요즘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우리의 의식 구조도 상당히 다양해져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주장들이 제기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최근 간행된 소설가 복거일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실려 있는 주장들은 그런 부류의 하나로 보고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독이 들어 있다. 책은 크게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번째 부분에서는 '민족주의를 버릴 ' 주장하고 있고, 두번째 부분에서는 '민족어를 버릴 ' 주장하고 있다. '지구 제국' 시대에는 민족주의나 민족어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인 같다. 그의 말대로 이는 대단히 '용감한 주장'이라고 있다. 먼저 그는 독도 영유권 분쟁이나 동해 표기 등의 문제가 터졌을 우리사회에 나타났던 여러 부정적인 민족주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이제는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되었다고 충고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만 따진다 하더라도 사이에서 약한 나라는, 그래서 사이의 분쟁에서 훨씬 손해를 크게 입을 나라는 우리다. 아쉬운 쪽은 일본이 아니다….". 그가 우리 사회에 민족주의를 버릴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소국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민족주의에 대항할 있는 약소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국제 사회에 호소하고 국제 기구에 하소연하는 것인가? 그가 주장한 우리 사회의 감정적인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그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민족주의 죽이기' 동의할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두번째 주장은 '민족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 것이다. 그가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고 주장하는 근거는 놀랍게도 단순하다. 지금은 미국을 지도국으로 하는 '지구 제국' 시대이고 시대에는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우리가 '지구 제국' 중심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구사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영어를 처음부터 모국어로 배우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민족주의자들의 맹렬한 반대로 그렇게 없으니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국어와 함께 사용하게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구 제국' 어떤 나라인지 그가 밝히지 않았으니 수는 없으나 공용어인 영어만 잘하면 나라의 중심부에 들어갈 있다는 생각도 천박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으로 보는 생각도 단순하고 위험하기는 그가 배척하고 있는 민족주의자들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야 것이다. 한편 영어를 국제어로 보고 국어까지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가 어떻게 하여 국어 속에 들어와 있는 '쓰리, 와이로, 히야카시' 같은 일본어 찌꺼기를 되살려 쓰자고 주장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일본어는 영어와 같은 반열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국어는 아무렇게나 의사소통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면 되는 하급언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1천년 전에 자기 정체성을 잃고 국어를 중국어의 하위 언어로 전락시켜 우리 문화와 민족의 자주성을 송두리째 짓뭉개버렸던 신라의 지식인이 21세기를 앞두고 환생한 것이 아닌지 착각하게 한다.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저자).


열린 민족주의를 찾아서.....복거일 [조선일보 9877]

## 한국은 민족주의 과잉...영어 공용어는 현실 ##.

글은 졸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비판한 남영신씨의 '세계화 위해 민족 버리자고?' 답하는 글이다. 남씨의 글을 읽으니, '민족주의와 민족어는 너무 예민한 주제들이어서 논의가 차분히 진행되기 어렵다는 사정' 새삼 절감하게 된다. 민족주의와 민족어에 관한 생각은 지금 인류 사회들이 느슨하게나마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이제 세상에서 국경 안에서 끝나는 일은 드물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또는 환경 문제 . 이번 외환 위기가 우리에게 아프게 일러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반영해서, 영어가 실질적 국제어로 자리 잡았다. 놀랍지 않게도, 이제 민족주의는 점점 현실에서 유리되고 비적응적으로 되어간다. 특히 다른 민족들과 민족국가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닫힌 민족주의' 지닌 사람들은 둘레에 괴로움을 끼칠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해를 입힌다. 민족주의적 열정은 불이다. 그것을 다스리면, 사회에 활력이 넘치지만, 잘못 다스리면, 많은 것들을 잃는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열정을 다스려서 '열린 민족주의' 다듬어내야 것이다. 남씨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되었다' 적이 없다. 그렇게 버릴 있는 것이라면, 민족주의에 대해 무슨 걱정을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논지는, 민족주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우리가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순시선이 독도 근해에 나타났을 , 우리 대통령이 군함을 보내 시위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국내 정치를 겨냥한 과잉 대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교적으로 손해를 보았다. 우리가 외환 위기를 맞자, 바로 대통령은 서둘러 경제 부총리를 일본에 보내 원조를 요청했다. 그나마 돈도 빌리지 못했다. 나는 이런 공허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국제어와 민족어에 관한 주장을 '민족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 요약한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국제어로 자리잡은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입는 손해가 이미 너무 크고 앞으로는 더욱 커질 터이므로, 경제 논리는 사람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삼도록 만든다는 것이 주장의 바탕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생존에 결정적인 기술이 되었고, 모두 영어를 배우는 투자를 하고 있다. 아직 모국어도 배우지 못한 아이를 영어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부터 이어폰을 끼고 영어 회화를 배우는 중년들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그런 투자는 효율이 아주 낮다. 그래서 나는 일단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을 것을 제안한 것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물었다. '만일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뒤늦게 오역이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도 이용 가능한 정보들의 몇십만 분의 일이나 몇백만 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


복거일씨의 '탈민족주의' 비판-"지구제국" 강대국 희망사항이다……

한영우 [조선일보(9879)]: 민족주의 논쟁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가 소설가 복거일씨의 저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간행)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복씨는 책에서 작금의 경제위기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거친 민족주의 탓이 크다며, '영어 공용어'론까지 제기하며 탈민족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한 있다. 그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국어연구가 남영신씨가 '과잉 세계주의의 천박성'이라고 비판하자, 복씨는 다시 이를 반박하는 글을 발표했었다. (편집자).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맞섰다고 가정할 , 약자가 싸우지 않고 항복해 버리는 것은 일단 합리적인 선택이다. 것이 뻔한 싸움을 하는가. 그러나 지고 나서 계속 강자만 섬긴다면 이미 노예다. 경제논리로 본다면 노예처럼 안정된 삶도 없다. 강한 주인을 만났으니 최소한의 삶은 보장된다. 주인을 흉내내다 보면 자기발전도 있다.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가지다. 노예로서 편안하게 사느냐,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주인노릇을 하면서 제멋으로 사느냐이다. 역사를 보면, 대다수의 인간은 후자의 길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은 합리적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빵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라고 했는지 모른다. 우리 역사에서 경제논리와 극단적 합리주의가 나라를 망친 사례가 바로 대한제국의 멸망이다. 사실 친일파들은 스스로 매국노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다.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강하고 앞선 나라와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이보다 합리적인 판단이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은 있다. 그리고 합리를 모르는,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광복에 이바지하였다. 덕에 오늘 우리가 있다.

요즘 IMF시대가 되면서 경제논리와 경제적 합리주의가 우리 사회의 지표가 듯한 느낌이다. 경제와 관련이 없는 분야까지도 경제논리와 경제적 합리주의가 우리 사회의 지표가 듯한 느낌이다. 경제와 관련이 없는 분야까지도 경제논리로 촌탁하고, 기준에 맞춰 시비가 결정되고있다. 사실, 시장경제 원리보다 합리적인 것은 없다. 우수한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어야 발전이 있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발전만이 능사가 아니고, 합리주의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합리주의와 관계없는 문학, 예술, 종교 따위는 필요한가. 오히려 합리주의가 극단으로 가면 사회가 위태롭다는 것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적자생존을 신봉하는 경쟁원리가 제국주의를 낳았고, 그것이 세계평화를 깨지 않았던가. 개체의 발전이 반드시 공동체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무수한 약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문화전통이 다른 강자의 시장원리가 적용될 때에는 정서적 불안이 공동체를 급속도로 파괴할 있다. 지금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고, '지구제국' 같은 예언을 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것은 몇몇 강대국이 가진 희망사항일 뿐이다.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는 것을 환영할 일도 아니다. 소설가 복거일씨의 '국제어시대의 민족어' 각론 부분에서는 경청할 만한 대목이 많다. 지나친 배타적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합리주의를 강조한 것도 기본적으로 옳다. 그러나 모든 사물을 경제논리로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 유감이

. 경제와 거리를 두어야 문학인의 시각이 그렇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국민을 향해서 이야기는 아니다. 영어가 짧아서 우리 사회의 위기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정체성도 모르고, 분수없이 세계를 향해서 뛰다가 당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진단과 처방도 총체적이어야 한다. 지엽을 가지고 본질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있다. 비단 복거일씨의 경우만이 아니다. 지금 두려운 것은 IMF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체제의 단기적 처방에만 급급하고, 인류의 미래를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설계하는 안목의 부족이 가장 두렵다. (서울대 교수·한국사)

[논쟁] `지구제국' 실제로 존재한다....복거일 [조선일보;1998 07/10() 19:24 입력] 국경 없는 경제시대...IMF-인터넷 초국가적 질서 생겨 . 이것은 졸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비판한 한영우 교수의 (10일자 17) 답하는 글이다. 교수께서 지적한 사항들은 여럿이 지만, 중요한 것들은 둘이다. 하나는 경제 논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 다른 하나는 지구제국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물자와 돈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행동하는 모습 , 특히 그들이 시간이나 돈과 같은 자원을 여러 목적들에 나누어 쓰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래서 그것은 너른 뜻에서의 심리학의 분야 . 자연히 사람들의 활동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접근할 있다. 결혼, 출산, 선거, 또는 범죄처럼 일반적으로 경제적 활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행동들도 경제학은 설명하고 예측한다. 물론 경제적 접근엔 한계가 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한계는 경제학이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주어진 조건으로 여긴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대해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 경제학의 틀을 따르면서, 나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대해 직접 평가를 하는 일을 되도록 피했다.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교수의 지적은 어쩌면 그런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졸저에서 '지구제국'이란 말은 다분히 상징적으로 쓰였다. 말은 근년에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면서 제국의 성격을 지닌 질서가 나타났음을 가리킨다. 말을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교수께서 내놓은 비판이 강력해진다는 것을 나는 선선히 인정한다. 현대판 로마 제국이 나타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반면에 지금 세계는 단순한 민족국가들의 조합은 아니며 주권국가들 넘어서는 초국가적 질서가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도 드물 터이다. 정치적으로는 '국제연합' 비롯한 국제 기구들이 나름의 몫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이번에 아프게 경험한 것처럼, 국경은 상당히 낮고 성기어졌으며,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이 중앙정부 노릇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과학, 기술, 예술, 종교와 같은 분야들에선 국적은 이미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통신수단들이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묶는 신경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지구제국' 이상적 사회는 아니다.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고, 그것의 운영은 중심부의 강대국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강대국들만이 그것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니다. 실은 약소국들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다. 국제적 질서는 비록 공평한 것이 아닐지라도, 약소국에 이롭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구제국' 정복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제 활동을 통해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경제 논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 활동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묵은 질서를 바탕부터 허문다. 따라서 교수께서 전쟁과 노예-자유민을 대비한 적절한 틀이 되기 어렵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지구제국' 이미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고 우리 삶의 모든 부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은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 환경에 맞게 조절돼야 함을 뜻한다. 거친 민족주의적 행동을 삼가고 실질적 국제어인 영어를 호의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그런 논거에서 나왔다. ( 소설가 )

[논쟁/이윤기] "선택하라면 국어다", `영어 공용어' 비판, 조선일보(9807/12() 19:32 입력 713일자'셰익스피어를 잃지 않고도 세르반테스를 얻는 방법'. 꼭지의 뜻있는 글을 최근 읽었다. 어느 일간지가 번역, 게재한 듀크 대학 교수이자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미국은 2 언어교육 실시해야 한다' 도정일 교수가 잡지에 '아이자이어 버얼린의 선택'이란 글이다. 도르프만의 요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나는 영어로 자서전을 쓰고 스페인어로 희곡을 쓰는 혼성 인간이 . 나처럼 언어의 양손잡이로 크는 것은 흔한 일일 없다… 미국인들 모든 나라들이 영어를 '당대의 언어' 다투듯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나라 말을 배워야 하느냐고 것이다… (하지만)그건 단견이다. 언어 교육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은 백년이 되어 멋진 다언어 계에서 단일언어 국가로 쳐질 것이다… (영어권 어린이가 스페인어를 배우면) 셰익스피어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르반테스를 얻게 것이다." 도정일 교수가 글의 요지는 이렇다. "유럽 지성사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버얼린은 유태인이다. ( ) 친구에게 이런 테스트를 적이 있다. '알라딘 램프를 문지르면 기적을 일으킬 있네… 램프를 문질러 전세계 유태인들을 순간 스칸디나비아인으로 만들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유태인은 역사의 기억, 고통, 유태인을 유태인이게 하는 모든 것들을 몽땅 잃겠지만 대신 행복한 백성이 있겠지. 문지를 텐가?' 그는 유태인이기를 포기한 일이 없다. 그가 선택한 것은 '문지르지 않는다'였던 셈이다. 세계화주의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 가진 인간적 가능성의 만개를 위한 조건, 그의 존재에 의미를 주고 그를 가장 편안하게 하며 그를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은 추상적인 세계성이 아니라 , 고향, 동네, 친구들 같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국지성'이며 국지적 관계이다. 국지성은 세계성과 반드시 상치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 않고 세계성 때문에 희생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성은 국지성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해서 가능하다." 중학 1학년 나와 함께 미국으로 아들은 8년째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겨울, 영어를 자유자재로 있게 되었고, 영어라는 무기의 확보가 무한 경쟁 시대의 유리한 고지 선점이 있는 만큼, 일찍이 영어 학습환경을 만들어준 부모에게 무척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효율의 측면만 본다면 맞다. 아들은 도르프만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딸은 버얼린의 길을 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도미한 영어는, 한국어 발음 습관의 잔재가 묻어 있는 아들의 영어와는 달리 현지인 영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딸은 재작년, 입시 지옥을 알면서도 귀국을 고집했다. 딸은 너무 늦기 전에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있도록 공부하고 싶다고 했고, 하고 있다. 아들의 경우 어휘가 풍부하고 표현이 세련될 수는 있을지언정 현지인 발음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뜻에서, 나는 영어 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동한다. 그러나 영어 조기 교육이 민족어 교육에 지장이 정도로 강화되는 것에는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영어가 판치는 세상이 것이라는 주장은 부정하지 않지만, 민족어교육에 앞세워야한다는 주장이나 민족어가 사멸하게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복거일씨의 전망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이고 그의 대안 제시가 얼마나 고뇌에 것인지 나는 짐작한다. 어머니가 문둥이라고 할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던, 유태인 아이자이어 버얼린 같은 조선인 김소운선생이 그리워지곤 한다. <소설가·번역가>

영어 `내것화' 관건이다......정과리 [조선일보,9807/13() 19:16 입력]

복거일씨의 '영어 공용화론' 옹호-.

복거일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간) 불씨가 되어, 남영신 한영우 이윤기 제씨가 잇달아 지핀 논쟁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대립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아니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 '주장'하지도 않았고, '지구제국'이라는 말을 단순히 강대국의 세계지배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만일 비판자들이 그의 책을 꼼꼼히 읽었다면, 안에는 진단과 처방 사이에 미묘한 길항이 있으며, 진단은 세계 질서의 현재적 흐름에 대한 지나 정도로 투명한 분석인 반면, 처방은 역설적이게도 뜨거운 민족주의적 열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있었을 것이다. 엄격히 보자면, 논쟁의 대립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원리민족주의 실용적 민족주의의 대립이다. 그러나 대립이 이렇게 첨예하게 부각되는 것은 단순히 오해로 인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실로 사이에는 도저히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빗장이 질러져 있으니, 빗장이란 '세계화'라는 음절 안에 집약되어 있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냉전체제 붕괴, 경제망의 확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자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가 점차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는 민족국가의 운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화는 전혀 별개의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조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화와 동의어라 것이 그것이다. 실로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정치와 경제뿐만이 아니라, 학문 문화 기술 언어 삶의 모든 부문들이 미국의 영향력 안에 놓이고 미국적 방식으로 재편성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없는 실이며, 바로 이것이 민족주의의 심장부를 치명적인 바늘처럼 파고들 패권국에 의해 여타 민족국가들이 노예의 운명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주입하는 것이다. 복거일씨의 문제제기는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수락이 아니다. 씨가 촉구하는 것은 세계화의 이중적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요구되는 불가피한 생존조건에 대한 성찰일 뿐이다. 복거일씨는 원리 민족주의자에게 바늘이 되었던 것을 내시경으로 바꾸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시경으로 비추어볼 , 세계화는 역전될 없는 추세이고, 그것 기본 도구들을 미국이 선점했으며, 그러나 도구들을 기민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자산으로 제것화한다면 세계 체제 내의 능동적 참여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것이 복거일 주장의 요체이다. 주장의 실천적 항목의 하나로 복거일씨가 들고 나온 것이 세상 들끓게 하고 있는 영어 공용화론이다. 우선, 이것이 영어의 모국어 화와는 다른 착상임을 지적하기로 하자. 다음, 영어가 사실상의 국제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다음세대들이 자유롭게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은 앞세대 한국인들의 피할 없는 의무이다. 토론은 의무를 전제하고서 진행되어야 한다. 영어가 국제어가 오늘의 언어환경은 단순히 영어권 국가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가 인류 전체의 자산 가능성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문제는 타인의 도구를 활용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역사적 경험 문화적 유산을 거기에 새겨 넣어 실질적인 제것화를 달성하느냐이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결국 한글과 영어의 공존의 방식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대한 준비와 아울러 한글의 세련화를 서로 떼어놓을 없는 이중적 과제로 떠맡아야만 한다.

<충남대 교수·불문학>


1998.07.15

지식사회 강타한 `민족주의 논쟁'

민족주의는 역시 우리 사회 지적 흐름에 내재된 폭발성 강한 뇌관이었다. 중견 소설가가 "우리 사회가 맞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이라고 주장하며 건드린 뇌관은 무서운 힘으로 지식 사회를 강타, 찬반 논쟁으로 발전했다. 복거일씨의 저서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간) 계기로 조선일보에 탈민족주의와 영어 공용어화 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일주일. 논쟁에 참가, "지구제국은 강대국 희망사항일 뿐이다" 복거일씨의 탈민족주의 주장을 질타했던 중진 한국사학자 한영우(서울대) 교수는 "글이 조선일보에 게재된 (10), 지금까지 신문에 글을 이래 가장 많은 전화를 하룻동안 받았다" 말했다. 서울 중앙병원이 자체적으로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부산방송 FM라디오는 14 저녁 6 '헤이 러시아워' 프로그램에서 복거일-남영신씨의 논쟁을 내보냈다. 조선일보와 인터넷 조선일보에는 문제에 대한 저마다의 주장을 담은 원고가 40 넘게 쏟아져 들어왔다. 민족사관, 민족문학, 민족적 민주주의, 민족주체성, 반민족적….'민족'이란 말만 들어가면 권위와 신성함을 인정받던 시대가 있었다. 이번 논쟁은 적어도 민족주의의 이같은 권위에는 적신호가 걸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복씨의 영어공용어화 주장을 비판한 사람들일지라도 '거친 민족주의를 다스려야 한다' 입장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의 글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거친 민족주의를 다스리는 구체적 실천적 방법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는 앞으로 논쟁의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영어 공용어화' 문제가 워낙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르다보니 40 여편의 기고들은 자연히 복씨에 대해 비판적 진영에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이중 언어생활의 효용과 갈등을 체험하고 있는 외국 거주 한국인들이 인터넷 조선일보를 보고 기고한 글들도 여럿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미시간 주립대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정택 씨는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적으로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국민 모두가 영어를 해야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필리핀 파키스탄 인도가 영어를 공용어로 택하지 않아 못사는 것이고, 일본이 영어를 공용어로 택해 잘사는 것인가. 영어는 그걸 필요로 하는 전문인이 능숙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보냈다. 반면 11살에 미국에 뉴욕에서 내과의사를 하는 제임스 전씨는"한국이 다른 세계로부터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다른 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방성을 보장해주는 숙달된 영어다. 이중 언어를 쓴다고 반드시 주체성이 결여되는 아니다"라고 복씨를 두둔했다. 논쟁의 전개과정에서 양쪽의 대립을 지양하려는 시도가 나온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민족주의와 세계화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주장(강기준 이애란씨)이다. 민족주의 논쟁이 세계화의 태풍 , 새로운 세기 한국의 진로를 좌우하는 문제인 만큼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쟁에 참여하는 열기가 뜨겁고, 인식수준이 성숙할 수록 우리사회 진로는 밝을 수밖에 없다. (* 김태익 기자·tikim@chosun com *) 


1998.07.15 [조선일보, 논쟁 의견] 21세기에 한국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21세기에 한국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거일씨의 '국제어시대와 민족어'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민족주의 세계화의 양자택일적인 극단의 논점을 취하고 있으며, 영어의 공용어화 문제에 논의를 집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으로서 21세기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고민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소련 공산주의 몰락이후 미국은 실질적인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미국 중심의 경제질서에 반대하는 유럽연합의 보호주의 무역제창에 대해 UR 이은 WTO구도 자유무역을 세계적인 경제질서로 구축하여 놓았다. 미국주도의 세계적 질서의 존재와 함께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 하나가 바로 민족주의이다.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이후 등장한 수많은 민족단위의 국가들과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나타나는 민족단위의 독립 움직임 등은 영토확장에 주안점을 1819세기 민족주의의 개념과는 분명 다른 20세기적인 현상이다. 미국위주의 세계적인 질서와 민족주의의 동시적인 발현은 정보화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 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정보접근을 용이하게 하였고 국가적인 정보 통제권을 약화시켰다.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는 하나이다. 정보화시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과학 기술적인 매개체를 이용하여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내용 자체는 서구적인 가치를 근간으로 것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실이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접근할 있는 언어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찌 영어뿐이겠는가!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우리보다 언어능력에서 앞서가고 있다면 그것은 전문지식에서도 앞서 있을 공산이 것이다. 해전 만난 싱가폴의 초등학생은 중국인으로 집에서는 중국어를, 학교에서는 영어와 말레이지아어를 배워서 3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우리가 대학 때까지 언어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바로 시기에 그들은 전공에 할애할 있는 시간을 중등, 고등 대학기간까지 버는 셈이다. 언어능력을 가짐으

로써 향유할 있는 개인의 풍요롭고 자유로움을 넘어서서 이것은 국가의 경쟁력과 관련되는 것이다. 강대국인 미국 유럽 일본 우리와 경쟁국인 싱가폴 홍콩 대만,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 인도 브라질 등과의 피할 없는 접근을 위해서는 영어는 물론이고 그들의 언어로 마주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어에 있어서 우리가 이들 나라보다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은 생존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들의 영어교육 정책을 비교하여 보는 것도 우리의 영어교육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함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이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영어를 비롯한 언어능력의 겸비는 우리의 전문지식이 있을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지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에 대한 논의가 가중 것은 논의의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적인 정체성을 갖지 못한 언어능력은 국제적 미아를 양산할 뿐이다. 민족적인 정체성의 기본은 언어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의 국어와 국사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은 더욱 강조되어야 주제로 여겨진다. 지금 세계는 세계화와 민족주의가 공존하고 있으며, 정보화는 피할 없는 대세이다. 정보화사회는 세계적인 추세를 회피할 없게 하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무대에 민족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세계화는 더이상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21세기의 한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우리능력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민족적인 정체성과 함께 개방적인 태도로 세계적인 추세를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애란. 주부


1998.07.15

국어를 박물관 언어로 만들자니...박광민

복거일(복거일)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비판한 남영신씨 글과 이에 답한 복거일씨 글을 읽었다. 결론적 느낌부터 말한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도 드러내놓고는 입에 담지 않을, 황당한 영어공용어화 주장에 경악을 금할 없다' 것이다. 복거일씨는 '지금 인류 사회들이 느슨하게나마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했는데 복거일씨가 말한 '하나의 제국'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만 지선(지선) 되는 조지 오웰의 'Big brother' 지배하는 일국체제인가. 복씨는 '민족주의는 점점 현실에서 유리(유리)되고 비적응적으로 되어간다' 했는데 우리가 민족주의를 버리면 서구인도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감이나 민족주의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할 있는가. 영어는 분명 국제적 공용어(공용어), 영어를 공부해 국제 사회에 일원이 되는 것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현재 세계의 언어별 사용 인구는 영어권 497백만, 스페인어권 49백만, 프랑스어권 127백만, 독일어권 126백만, 포르투갈어권 187백만(THE WORLD ALMANAC 1998) 정도이고, 한자(한자) 사용권은 중국을 포함 17 정도라고 한다. 복거일씨가 자존심 강한 프랑스나 독일,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권을 젖혀두고 무슨 근거로 '영어의 공용어화(공용어화)' 대세라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대세가 기울면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가. 대한민국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복씨 말대로, '열린 민족주의'라는 교언(교언)으로 국민을 속이고 민족 언어를 복거일씨가 조어(조어)해낸 '박물관 언어' 팔아먹은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의 ' ()' 되는 것이다. 일제(일제) 압제 속에서도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있었던 것은 우리 언어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고 국어가 '박물관 언어' 남은 후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은 하나 들이지 않고 대한민국을 자치주(자치주) 정도로 병탄할 수도 있을 게다. 필자는 복거일씨의,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졸고를 끝맺이 하고자 한다. "국어를 지키는 것이 조금 불편하고 손해보는 일이라도 옳은 길을 것이며, 그런 연후에 영어든 프랑스어든 스페인어든 자유롭게 배울 것이며, 복거일씨의 영어 공용어화론이나 국어의 박물관언어화라는 패역스런 논리에는 귀기울이지 말라.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1998.07.15

민족주의는 세계화의 안티테제 아니다 - 서길수

'영어를 공식언어로 해야 한다.' '영어를 공식언어로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내려온 해묵은 논쟁이다. 만일 모든 관공서나 공식적 석상에서 영어만 사용할 경우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 가운데는 만큼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뉴욕의 선거철에는 모든 뉴욕 시민들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후보자 약력을 받는다. 만일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에서 스페인어를 없애고 영어만 공식어로 채택하자고 주장하는 후보는 절대로 주지사에 당선될 없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국의 식민지도 아닌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궁극적으로는 모국어로 쓰자는 주장이 있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영어(미국어) 생활화하고, 매년 막강한 예산을 투입하는 미국에서도 영어를 미국 국민의 모국어로 만들지 못하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영어를 공용어로 한단 말인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저자는 이런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논의를 편하게 무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국민이 영어를 배우고 있는 나라 한국, 그러나 영어를 일생동안 거의 써먹지 않는 한국인, 이것이 우리의 가장 비경제적인 현실이다. 만일 정말 경제원리에 따라 외국어를 공부한다면,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과 돈과 정력을 쏟고 있는 영어 시간을 절반 또는 절반의 절반으로 줄이고, 시간에 창조적이고 폭넓은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한편 거기서 절약되는 돈과 힘으로 학생수의 100분의 1 미국에 45년씩 유학시키거나 아예 미국식 학교를 한국에 세우면 된다. 정도 인원이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경제가 언어적으로 최상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충분한 인원이 되고, 나머지 국민은 간단한 회화나 상품명을 읽을 있을 정도면 된다. '미국의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장이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는 필리핀, 영어를 14 공용어 가운데 하나로 쓰는 인도,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영어를 훨씬 못하는 일본이나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우수하지도 생활이 국제적이지도, 국민생활이 행복하지도 않다. 싱가폴이 앞서가는 것은 모든 제도가 선진적이어서 그렇지 이유가 영어사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홍콩은 사실상 영국이었기 때문에 영어가 국어였다는 특수상황이었다. 세계는 지구촌이 되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는 국제어가 없다. 로마어는 국제어였다. 뒤를 이어 폴투갈, 스페인어가, 그리고 프랑스어가 정치적 입지에 따라 국제어 역할을 하였다. 영어가 위치를 차지한 것은 2차대전 이후 반세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어떤 말이 국제어가 것인가. 영어는 절대로 국제어가 되지 못한다. 로마 로마가 로마어의 무용론을 상상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겠는가? 아마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한 저자라면 중국어를 미래의 국제어로 예측하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중국어이며, 중국어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민족주의는 국수주의와 구별되어야 한다. 민족주의는 세계화의 안티테제가 아니다.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국가에 충성하듯, 자기 나라 자기 풍습 자기 말을 사랑하는 민족주의가 진정한 세계주의자가 되며 때만이 다양하고 올바른 지구가족이 있다. 왜냐하면 자기 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것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사람은 열등

의식 때문에 진정으로 남을 인정할 없기 때문이다. 지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바로 이점이 오늘날 사상, 철학, 역사, 문학 모든 학문의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미래를 마치 다수결 원칙처럼 현재 가장 많은 것을 좇아가는 것이 최선이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래학이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류의 미래인가' 연구하여 방향으로 모든 인류가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복거일씨의 책은 지구미래학, 민족주의론, 국제어론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학문적으로 논의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피상적 논의가 오히려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흐를까 우려가 되며, 책이 갖는 가치 이상으로 작가를 스타로 만들어 앞으로 이런 논의가 비정상적으로 확산될까 걱정이 된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장


1998.07.17

탈민족주의에는 찬성.....박이문

## 영어공용어는 시기 상조 ##.

지난 반세기 민족주의는 아무도 감히 건드릴 없는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터부에 정면으로 도전한 복거일의 용기는 대담하다. 사람의 언어는 사람과 구별될 없으며, 민족의 언어는 민족어와 분리될 없다. 그럼에도 영어 공용어화를 계획해야한다는 그의 논지는 혁신적이며 이를 전개하는 방식은 통쾌하다. 세계화는 가속화하고 있고 그것은 돌이킬 없는 추세이다. 세계화는 다양한 문명권들이 '세계제국'으로 부를 있는 하나의 인류문명권으로의 통합과정이며 세계제국은 서구 특히 미국을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싫건 좋건 참여하지 않고서는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고립화, 주변화, 퇴화, 그리고 화석화를 면할 없다. 세계화에의 참여는 국내적 혹은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 국제적 차원에서의 밀접하고 신속한 정보 교환을 전제로 하며, 이러한 정보유통은 모든 민족과 사회가 공유할 있는 공동의 언어 , 국제어를 필요로 한다. 싫건 좋건, 부당하건 정당하건 상관없이 앞으로 세대 아니 세기 전개될 인류 공통 '모국어' 영어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생존조건의 하나이며, 영어의 능숙도는 세계화 속에서의 번영과 쇠퇴 정도를 상대적으로 가름하는 필수조건의 하나이다. 세계사의 흐름, 그리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의 위상에 대한 냉철한 인식, 새로운 인류문명을 창조하는 '세계제국'에의 적극적 참여, 그리고 그러한 참여를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서의 영어 문제 등에 대해 우리는 가정적으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혁명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우리를 감정의 게토 속에 가두어 놓아 객관적 현실을 왜곡시키고, 새로운 인류문명에 세계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동참의 길목들을 막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복거일의 폐쇄적 민족주의 비판은 민족주의가 산을 보게 하는 나무와 같다는데 있다. 그의 민족주의 비판은 투명하고 옳다. 그러나 세계화의 구체적 그리고 기본적 방법을 위한 영어공용어론이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기본적 의사소통 매체로 삼자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의 영어공용어론은 그의 민족주의 비판만큼은 설득력이 없다. 중세 유럽 지식인들이 학문과 문명화를 위해 지방어를 버리고 '라틴어' 공용어로 택한 것은 현명한 일이며 또한 그들은 그런 선택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정은 그와 똑같지 않다. 설사 공용어화가 바람직하다 해도 그것은 세기 영어가 널리 자연적으로 보급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더구나 그러한 공용어화가 가능해서라도 7천만이 반만년 동안 물려온 정신적 유산을 담은 민족어를 생판 외국어로 대치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인가는 심각히 논의될 문제이다.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는 도구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복거일은 우리주위에서 보기 드물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의 영어 공용론의 합리성은 의심스럽다. 소설가 복거일씨의 `탈민족주의와 영어 공용어화'주장을 둘러싼 논쟁 경과와 인터넷 - 투표상황은 인터넷 조선일보 특집 페이지 (http://chosun. com/poll/980710.html)에서 있습니다.


조선일보;9807/19() 20:28 입력

[논쟁] "영어 능동적 도입해야"-「공용어주장」동조...함재봉

배타적 민족주의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다. 만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올바른 , 보편 타당한 것이라면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 '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 타당한 것이라는 자신이 없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궁극적인 기준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성이란 '강자의 '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대국이나 있다. 강대국에 둘러 싸여있는 약소 민족국가가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뿐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기약해왔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보편적인 사상과 철학,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는 불교를, 조선조에서는 유교를, 근세에 들어와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문명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상과 제도는 특정 민족과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굴절되고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래문명과 문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살찌웠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성립된다. 불교와 유교는 '외래' 문명이지만 우리 특유의 모습으로 일구어 왔다.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한문, 중국 글자로 되어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보물들이다. 그러면서도 한문이라는 국제어로 쓰여졌기에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민족문화는 결코 불변의 고정태가 아니다. 바뀌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결코 무국적의 보편주의자나 자유주의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우리의 문화', '우리 민족' 번영과 미래를 기약해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얘기들이다. 복거일씨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민족주의자'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이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보다 빠르고 올바르게 수용할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역설이 있고 동시에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사상적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그것이 진정 한민족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도입한다면 결과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의 변형은 역시 한국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한글, 한자와의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사용과 발전을 전제로 영어의 도입은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혀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문화는 그만큼 보편화될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과 미풍양속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영어라는 국제어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어 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 차원에서 따져야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연세대정치외교학과 교수>


1998.07.20

영어공용화론 서구패권주의 연장……최원식

솔직히 말해서 복거일씨의 영어공용어론에 대해 이처럼 여러 사람이 나서서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약간의 회의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반대론 못지 않게 찬성론도 만만치 않은 세를 얻어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 물밑에서 은밀히 떠돌던 것이 특히 IMF사태를 계기로 복거일씨를 대변인으로 삼아 수면 위로 부상했다고 보아도 좋다. 그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고 과감히 제안한다. 물론 일정기간 영어와 '조선어' 함께 공용어로 삼자고는 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감안한 제스처일 뿐이다. 영어가 국제어로서 지구촌을 석권하는 과정에서 '조선어' 비롯한 민족어들의 운명이 사멸의 길을 걸으리라는 그의 관측에 의하건대, '조선어' 자연 폐기는 시간문제로 된다. 제안에는 국제조류에 둔감한 IMF사태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함축되어 있다. 또한 박정희 시대 이후 강력한 정치적 동원력을 행사해온 우리 사회의 '닫힌' 민족주의를 제어하고자하는 제안자의 원망이 내장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나라의 언어만큼 문화의 완강한 독자성, 또는 침투 불가능성을 표상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영어공용어론은 한국민족주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그에게 일종의 전략적 요충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여튼 IMF사태 이후 우리사회를 규율해온 발전모델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그의 제안에 일리가 없지 않다. 어떤 점에서는 우국적 충정도 얼비치고
있어서 제안을 간단히 왕년의 친일파 다루듯 봉쇄해서도 아니 것이다. 나는 그의 제안을 검토하면서 일본의 메이지(명치) 초기 녹명관(1883 개관) 시대를 연상했다. 일본의 서구 추종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서구인과의 결혼을 통한 인종개량론과 함께 나타난 것이 가나(가명) 폐기하고 알파벳을 채택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후 일본사회는 녹명관시대를 한때의 철부지 에피소드로 돌리고 서구주의로부터 국수주의로 급회전한다. 나는 복거일씨의 제안이 오히려 '닫힌'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의 부활을 가져올까 우려한다. 기실 서구주의와 국수주의는 단순한 대립물이 아니라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서양을 모방하여 서양을 따라잡겠다는 서구주의의 뒤집어진 형태가 국수주의니, 그것은 서양 패권주의의 전화라고 수도 있다. 그의 영어론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규율해왔던, 민족주의적 동력에 근거한 국가주의를 해체하고 서구, 특히 미국의 시장주의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시장주의는 국가주의만큼 독재적, 독점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대한 한국사회의 일방적 적응만을 강조하는 그의 서구주의는 민족주의의 매우 특이한 변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우상과 시장의 우상을 함께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의 탐색이다. 아마도 그것은 영어보다는, 김수영이 노래하고 있듯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전통, '놋주발보다도 쨍쨍 울리는 추억'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 인하대교수·국문학 )